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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김 영 시집, ‘벚꽃 지느러미’..
문화

[신간] 김 영 시집, ‘벚꽃 지느러미’

신영규 기자 shin09ykkk@hanmail.net 입력 2022/09/04 03:52 수정 2022.09.04 04:12
남들이 보지 못한 특수 언어 렌즈로 시 포착

[뉴스비타민=신영규기자]

▲벚꽃 지느러미 표지


“굴참나무 물관부를 따라 우듬지에 이를 때/나무는 찰박이는 기슭이 된다/굴참나무는 죽어서도 이 파문을 놓지 않아/가을이 되면 풀숲도 나무 밑도/몇 가마의 파문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본다/톡톡, 어린 파문을 떨구는/풍성한 숲은 번식의 법칙을 갖게 된다/그렇지만 누군들 저의 파문을 내어놓고 싶겠는가/그저, 꾹꾹 눌러 놓은 용수철 같은 파문을/아무도 모르게/또 후년으로 나를 뿐이다”
-김영 시인의 시 ‘굴참나무 기슭’ 중에서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이미지로 시(詩)의 정수를 보여주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김영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벚꽃 지느러미>(현대시학사)를 출간했다.


 김영 시인은 “오래된 익숙함이 털갈이를 끝내는지 남은 재채기 반 토막이 마저 튀어나온다”며 “여기까지 끌고 온 생각이 또박또박, 찬찬히 침전한다”라고 서두에서 밝혔다.


 시집은 총 4부로 나눠 1부에는 ‘작년에 넣어둔 말’, 2부 ‘밤의 칠판’, 3부 ‘무릎의 죄’, 4부 ‘물의 사원’ 등 60편의 다양한 시가 수록되었다.


 김영 시인은 독특한 시선을 갖고 있다.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매혹적인 자기만의 언어로 시를 낚는다. 이런 때문인지 그의 시는 기존 시인들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숭원 문학평론가는 “김영 시인은 사물을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보지 않고 개개의 사물을 융합해서 접합시킨다”면서 “사물들이 지닌 독존의 대립각은 시인의 렌즈를 통과하면서 유연한 곡으로 이완된다. 대립은 소멸하고 상충이 소실되면서 둥글고 부드러운 원융(圓融)의 공간으로 수렴된다. 이것은 시선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문제”라고 평했다.

 
이숭원 평론가는 이어서“김 시인은 사물의 개별적 단층의 벽을 허물고 여러 사상(事象)의 이어짐과 넘나듦과 주고받음을 상상한다. 그의 시에서 사물은 고정된 자리에 정제하지 않는다. 주위의 사물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분리의 틈새를 넘어 이웃 마당에 촉수를 내민다. 이것이 융합의 선호가 되어 이웃한 사물들이 자신의 적소에서 벗어나 사물과 사물의 연대를 이룸으로써 커다란 조화의 공간을 형성한다. 이것을 융합의 시선, 화합의 상상력이라 이름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어느 시장 골목에서 보았다
쟁반마다 밥이며 찌개를 차려
층층이 머리에 올려 이고
혼잡한 사람들 틈을 헤집고 가던
밥의 길을
비켜라, 밥이 간다
아무도 밥을 막는 사람은 없다
뜨거운 첫 숟갈을 위해 길을 비쳐주고 있다
나물무침과 뜨거운 찌개와
구운 생선을 몇 층씩 머리에 이고도
밥의 길은, 밥의 힘으로 획획 지나간다
봐라, 밥은 언제나
저렇게 사람의 머리 위에서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그 아슬아슬 것들
말아먹고 비벼 먹으며
사람들은 틈을 비집고 또 살아간다
가지마다 꽃지개를 펄펄 끓이는
한여름 배롱나무와
간신히 차린 밥을 엎어질 듯 들고 오는
초가을 코스모스 덕분에
바람이 자라고 들판이 살아났다
비켜라, 하늘에 생채기 내던 구름 같은 인파여
툭하면 밥심을 잊어버리는 인파 같은 구름이여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밥은
시간을 잡히고 간당간당하게 차렸으니
젓가락으로 깨작거리지 마라
남의 밥그릇에 기웃대지 마라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고
비켜라, 밥이 삼시 세끼를 향해 간다
-「비켜라 밥이다」전문

▲김영 시인

이숭원 평론가는 위 시에서 “시인은 그 여인이 가는 길을 ‘밥의 길’이라고 했다”라며 “밥이야말로 세상 사는 사람들이 반드시 섭취해야 할 필수적 물질이다. 사람들은 밥을 위해 일하고 밥을 먹고 일할 힘을 기른다”고 나열했다. 그러면서 “한여름 배롱나무는 가지마다 꽃찌개를 펄펄 끓이는 모습이고 초가을 코스모스는 간신히 차린 밥을 엎어질 듯 들고 오는 모습이다. 이러한 자연의 성찬 덕분에 계절의 바람이 풍성하고 들판이 생명으로 가득 찬다. 사람들 가득한 시장터 건 동식물이 가득한 자연이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밥심’이다. 밥의 길은 누구든 막을 수 없고 차려진 밥상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밥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김영 시인은 시집 <눈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파이디아>외 4권, 수필집 <쥐코밥상>외 2권이 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장과 전북문학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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