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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세상] 박미혜 ‘수박’ 외 2편..
문학여행

[시가 있는 세상] 박미혜 ‘수박’ 외 2편

신영규 기자 shin09ykkk@hanmail.net 입력 2025/08/19 22:23 수정 2025.08.19 22:29

[뉴스비타민=신영규기자]

△박미혜 시인

1. 수박

검 퍼런 줄무늬에
발 없는 둥근 얼룩말이다
벌겋게 익었는지
속마음을 가끔 두드리는지
검은 점
씨앗들이 박혀 있다

한 입 베어 물고 씨앗을
얼굴에 붙여
모두들 하늘 보며 웃었다
흰 구름마저
우리에게 기분 맞추려고
점을 찍어 웃는다

지나가는 할머니
수박 물고 쫓겨 가는 몸짓에
온 동네 아낙들 배꼽
빠지듯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마트에 가면 반으로 가른 수박
붉은 속살 드러내어
아물지 않은 값싼 상처로 가득하다


2. 안부

전화가 울지 않을 지라도
문자가 없어질 지라도
하루쯤은 나는 견딜 수 있었다
침묵 속의 고요처럼
참을 수는 있다

커피 잔 입술 가까이 들어
마시며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그대에게 성급히 안부를 묻는다

달려가지는 않더라도
잔별이 뿌려진 고단한 성격이지만
아직도 그대는
밤을 새워 잘 버티어 내고 있나


3. 사과하기

빨간 치마를 벗기고 뽀얀
속살이 보이다

딱 소리 나게 기절을 시킨 뒤
사과는 주머니칼을 엄청 무서워한다
때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달콤한 진심이다

아삭아삭 잘근잘근
상처 받을 수 있을지언정
누군가 침묵으로
배를 채우려고 먹을 수 있을지언정
이제는
두려움으로부터 포기하라

사과야 내가 사과 할게
사과는 나뭇가지에서 빨간 치마를
감아 두른 채
굳은 결심으로 햇살 칠하고
매달려 있다

∙박미혜 시인은 전주에서 태어나 2018년 월간『한맥문학』신인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등단 후 전북문단, 전북펜문학, 신문학 등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면서 다양한 시적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성을 확보해가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회원, 국제PEN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 회원, 한국신문학인협회 이사 겸 사무차장을 맡고 있다. 첫 시집으로 『꽃잎에 편지를 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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