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대전시, 우암 송시열 관련 자료 다량 발견 |
송자대전판은 조선 정조 1789년 제작됐으나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소실(燒失)됐다. 현재 대전시 문화재로 지정된 송자대전판은 이를 다시 판각한 것으로 대전 남간사에서 제작했다고 하여 ‘남간사본(南澗社本)’으로 불려오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들은 이 남간사본의 제작과 관련한 통고문(通告文), 간찰, 입회원서, 망기 등으로 총 수량은 99점이다.
이번에 발견된 기록을 남긴 주인공은 삼척 유생 홍재모(洪在謨)로 그는 송자대전 중간소(重刊所)의 집사인 동시에 화양소제고적보존회 회원이었다.
그가 대전과 연을 맺게 된 것은 친척 홍낙섭(洪樂燮)이 구한말 위정척사학파의 거두 연재 송병선의 문인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삼척의 유생이 이처럼 대전의 유림과 교류하며 송자대전판 중간(重刊)에도 큰 역할을 한 것은 그만큼 송자대전의 재간행이 전국적인 사업이었으며, 당시까지도 대전 회덕이 전국의 유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상적 구심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사를 진행한 성봉현 교수(충남대, 시문화재위원)는 “그동안 간소일기(刊所日記)가 없어 송자대전 중간에 대한 부정확한 추측도 많았는데, 이번 자료의 발견으로 빈칸으로 남겨져 있던 기존 연구의 많은 부분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며 금번 조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실제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송자대전의 중간 과정을 기록한 유일한 사료로 당시 송자대전이 한 곳에서 판각된 게 아니라 영남의 함양과 대구, 호남의 나주와 무주 등 최소 4곳 이상에 판각소를 두고 진행됐다는 사실 등이 새롭게 밝혀졌다.
권정연 대전시 학예연구사는 “이번 조사의 성과는 송자대전 중간소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2013년 대전시에서 최초로 그 존재를 확인했으나 자료가 부족하여 연구를 진척하지 못했던 ‘화양소제고적보존회’에 관한 새로운 정보들을 얻게 된 것”이라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그리고 올해 대전시에서 진행한 지정문화재 정기조사 결과를 토대로 향후 송자대전판의 정밀조사와 보수 및 보존처리 또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비록 자료가 동해시에 있지만, 도록 발간이나 특별전 개최와 같은 방법 등을 통해 대전시민과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말 또한 덧붙였다.
이번 자료의 발견으로 대전 ‧ 충남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인 우암 송시열과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일제강점기 지역 유림에 관한 연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