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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세상] 최신림 ‘잃어버린 제국’..
문학여행

[시가 있는 세상] 최신림 ‘잃어버린 제국’

신영규 기자 shin09ykkk@hanmail.net 입력 2023/03/17 00:19 수정 2023.03.17 00:24

[뉴스비타민=신영규기자]

▲최신림 시인

언제부터 까마귀가 비둘기 영역을
침범하더니 깍 깍 큰소리로 아침을 밟고
전봇대에서 게슴츠레하게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싫었습니다

시든 태양을 씁쓸하게 지워버린
날개를 잃고 자신의 영역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그들이 가엾어 집니다

태양이 사라지고 그림자마저 삼켜버린
뾰족한 부리는 시치미 떼고
쉼 없이 작은 영역을 삼켜
배부른 허세를 부풀려
큼직하게 자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온종일 저물어가도록 비둘기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까마귀
가느다란 발에 힘을 주어 숨통을 조여 가는 태양은
시름시름 앓던 제국 주인의 등 뒤로 숨어 버렸습니다



∙최신림 시인은 동학의 발상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98년 월간 『문예사조』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홀로 가는 길』, 『바람이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듯한 어우러짐』, 『내장산이 나를 오라 손짓하네』, 『오래된 항아리』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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