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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세상] 김기찬 ‘나만 아는 이야기’..
문학여행

[시가 있는 세상] 김기찬 ‘나만 아는 이야기’

신영규 기자 shin09ykkk@hanmail.net 입력 2023/03/17 01:31 수정 2023.03.17 01:40

[뉴스비타민=신영규기자]

▲김기찬 시인

고향에 몸 붙이고 산 지 60여 년이 넘었습니다.
한번 붙인 궁둥이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 앉은 적 없으니
사람들은 붙박이를 토박이라 불러주었어요.

어느 날부턴지 내 눈썹에 의상봉의 첫 아침 해가 들기 시작하더니
산새들이 알게 모르게 솔씨를 물고 날아들었습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내소사 범종 소리 무한 창공을 떠돌다가 저물녘처럼 스며들기도 하고
대웅보전 솟을모란꽃살문을 만져보던 바람이 한 열흘 머물기도 했지요.

말간 옥양목 수만 필의 물길을 끌고 들어온 직소폭포는
눈썹과 눈썹 사이 쌍무지개를 걸어놓기도 했는데
그 쌍무지개를 보려고 신선봉 쌍선봉 관음봉 옥녀봉들이 다투어 기어올랐을 때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66㎞ 변산 마실길이 통째 걸어 들어오기도 하는 날엔
마실길에서 만난 변산바람꽃도 미선나무도 후박나무도 붉노랑상사화도
순한 눈 속에 하나같이 서해 천만 평 작약꽃밭노을을 담고 있었어요.

그러고도 어쩐 일인지 내 눈썹은 십만 평은 더 남아돌았던 것인데
멧돼지가 식솔들을 데리고 들어와 보일러를 놓고 수도를 들이자
겁 많은 고라니도 보란 듯이 솥단지를 내걸기도 했던 것입니다.

어제도 억센 내 눈썹에 문장을 새기느라,
딱따구리가 따닥,따닥 온몸을 밀어 넣기도 했고
아침저녁으로 쪽배 구름이 노를 저어 출퇴근하는 부안댐은
젖은 속치마를 탁탁 털어 안개로 널어 말리기에 바빴지요.

그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갑자기 재채기라도 하는 날엔 산새들은 화살처럼 하늘로 솟구쳤으며
길짐승들은 발이 부러져라, 가파른 능선을 내달리기도 했지요.
굴러떨어지는 돌덩어리에 멈칫, 놀라면서도
길짐승은 길짐승대로 날짐승은 날짐승대로 자유로웠어요.

창창울울한 내 눈썹에 변산이 송두리째 들어와 산다는 것을
나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내 눈썹만이 아는 사실이고
아직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는 감히,
변산이 내 본적라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그러려니 살게 되었답니다


∙김기찬 시인은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자유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바닷책』,『피조개, 달을 물다』,『채탄부 865-185』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과 신석정촛불시문학상, 전북시인상, 한국미래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북시인협회사무국장, 바다문학상사무처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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