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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이희근 '알량한 양옥 때문에'..
문학여행

[수필산책] 이희근 '알량한 양옥 때문에'

신영규 기자 shin09ykkk@hanmail.net 입력 2023/03/17 01:54 수정 2023.03.17 01:57

[뉴스비타민=신영규기자]

▲이희근 수필가

70년대 중반, 내가 전주시내 모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소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이 쌀 백 가마니짜리 계를 조직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들은 여유가 있어서 재산을 늘리려는 사람, 계획에 따라 새집으로 교환하려는 사람 등 편리하게 계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저녁에 아내에게 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계를 시작하면 서로 1번을 타려고 한다는데, 그 계는 이상하게도 1번을 타려는 사람이 없어서 계를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는 우리가 1번을 타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내의 뜻을 알아차렸지만 망설이고 있었다. 집도 좋지만 월급만 타서 5년 동안 매년 30가마니(가마니 당 80kg)의 쌀을 팔아 줄 일이 걱정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평소 집 없는 서러움을 여러 번 체험한 아내는, 집을 장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면서 눈 딱 감고 저질러 놓고 보자고 나를 설득했다.
날마다 아내는 복덕방을 통해서 집을 둘러보고 다녔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집을 고르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수중에 지니고 있는 돈도 문제지만, 지리적 여건이나 앞으로의 전망도 고려해야 한다며 쉽게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저녁이면 초죽음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집을 보러 다니던 나와 아내는 멋진 집을 발견했다. 지붕을 기와로 얹은 한옥이 아니라, 빨간 벽돌로 지은 2층 양옥집이었다. 콘크리트로 평평하게 슬래브 지붕을 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새로운 주거형태였다. 다섯 채 중에 다 팔리고 한 채만 남아 있었다. 게다가 대문 입구 쪽의 긴 방과 2층을 전세로 내놓으면 더 이상 빚을 지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내외는 계약을 서둘렀다.
다음날 내가 집을 계약했다는 소식을 들고, 동료직원들이 소음과 먼지 때문에 어떻게 살려고 철로 변에 있는 집을 샀느냐고 걱정을 했다. 그리고 나더러 자식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철로 변에 사는 사람들은 새벽 기적소리에 잠이 깨어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나는 주위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새 양옥집의 매력에 폭 빠지고 말았었다.
나는 선생님들의 우려와는 달리 기차가 지나가는 소음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내 집을 소유했다는 만족감에서 밤마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나의 집」을 합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도심에 있는 철로가 이설될 거라는 반가운 소리도 들려왔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겼다. 연탄불을 피우는데도 방이 따뜻해지지 않고 집 안에 냉기만 돌았다. 새집인데도 아궁이를 레일 식으로 고치고, 연탄불을 아궁이 깊숙이 넣고 겨우 겨울을 지냈다.
봄이 되어 현관문을 열어 놓고 마루에서 따뜻한 봄볕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멀쩡한 허우대를 뽐내며 화단에 서 있는 빨간 벽돌로 된 굴뚝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연기를 구경할 수 없었다. 삽으로 굴뚝 밑을 파 보았다. 연결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마당을 파고 찾아낸 플라스틱 파이프에서 연기의 기미가 있어 그것을 굴뚝으로 연결했더니, 굴뚝이 제 구실을 했다. 그것도 모르고 부엌만 손을 대며 겨우내 냉방에서 생고생을 했다.
한여름 어느 날,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있을 때였다. 비는 자꾸 내리는데 마당의 물은 빠져나가지 않고 점점 불어 마루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마침내 재래식 화장실이 넘쳐 오물이 마당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잘 마르도록 미리 사서 창고에 쌓아 놓은 겨울용 연탄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물이 나갈 하수구도 없이 집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백미계도 끝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하자보수공사를 하여 살기 편한 집이 되었을 때 희소식도 들려왔다. 도시 외곽으로 ‘철로이설확정’이란 뉴스였다. 철로 부지를 도로로 개설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집값도 오를 거라며 들떠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는 날벼락이 몰아쳐 왔다.
원래 철로부지였던 그곳을 시에서 택지로 불하한 뒤, 철로미관지구로 지정하고, 2층 이상 건축만을 허가했다. 그런데 그곳을 다시 8차선 도로용 부지로 확정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모든 토지가 수용되어 집이 헐리고 10여 평의 땅만 남았다. 작은 나대지에 건축을 할 수도 없거니와, 보상받은 돈으로는 셋집도 얻기 힘들었다. 알량한 양옥 때문에 또 빚쟁이 신세가 되어 버렸다.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남은 나대지 10여 평이 나의 구원투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도로변으로 길게 벋어 있는 그 땅이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그 땅값으로 이사하면서 진 모든 빚을 청산하고 한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근사한 외형에 매료되어 선택한 알량한 양옥 때문에 코가 빠졌던 추억이었다.

※이희근 수필가는 계간 『문학사랑』 으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교원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전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으로 『하얀 바지』 외 다수가 있다.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 전주문학상 문맥상 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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