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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렬, 고창문화연구회장 |
[뉴스비타민=이계원 기자]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의 한 작고 조용한 소나무 숲속. 숲길을 따라 오르면 수천 년 세월을 품은 나지막한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비지정 문화재인 산림리 고인돌 가이다. 해발 56m 제성산 구릉지에 위치한 이 부정형 반원형의 개석식 고인돌은, 외형만 보면 그저 무심히 놓인 오래된 돌덩이에 불과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표면에 새겨진 흔적과 지형적 맥락을 분석해 보면, 이 돌은 단순한 선사시대 거석문화를 넘어 하늘의 별자리를 땅 위에 옮겨놓은 천문도이자 신성한 제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창 성내면 일대는 입암산과 방장산 등 영산기맥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용교천과 소성천을 이루며 풍요로운 충적지와 구릉을 형성한 곳이다. 인근의 매봉산과 비봉산 등 완만한 구릉지는 일찍이 선사인들이 터를 잡고 화전과 농경을 통해 삶을 영위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농경지는 방장산의 북쪽 사면에 위치하여 토질에 모래가 많이 섞인 사질토가 많고 물을 오래 머금지 못하는 지형적 한계가 있었다. 가뭄에 매우 취약한 반면, 비만 자주 내리면 농작물이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녔다. 결국 인공 수리 시설이나 저수지가 없던 선사 농경 사회에서 물이란 전적으로 하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생존 조건이자 삶의 전부였다.
거북 형상의 이 고인돌은 하늘의 별자리(은하수)와 땅의 물(강)을 이어주어 가뭄을 극복하게 해주는 신령한 수신(水神)이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이 고인돌 위에는 수십 개의 작고 깊은 홈, 즉 성혈이 새겨져 있다. 이 성혈들은 단순한 홈이 아니라 은하수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주극성의 밝은 별들을 형상화한 것으로 사료된다. 고인돌의 장축 방향(160-340°)은 별자리를 관측하던 축과 맞닿아 있으며, 동서로 길게 형성된 덮개돌의 능선은 춘추분의 일출·일몰 방향을 지향한다. 인근 산림리 고인돌 나 등 주변 고인돌군과의 배치 역시 하지 무렵의 별자리 축(200°~220° 방향) 및 남두육성 패턴과 긴밀한 연관성을 보인다.
청동기 선사인들이 바라본 거북이와 은하수의 상징성과 문화적 의미이다. 순우리말로 은하수를 뜻하는 옛말은 미르 가람이다. 미르는 물을 주관하는 신령스러운 영물인 용(龍)을 뜻하고, 가람은 넓은 강(江)을 의미한다. 즉,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는 하늘에 흐르는 거대한 용의 강이자, 땅의 모든 생명을 적셔주는 궁극의 수원(水源)으로 인식되었다. 하늘의 은하수가 맑고 푸르게 흘러야 땅 위에도 비가 내리고 강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믿었다. 또한 칠흑 같은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은하수는 어둠과 기아의 공포를 물리치고, 벼가 익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지표이자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하였다.
결국 청동기 시대 선인들은 이 고인돌을 밤하늘 은하수의 상징이자 용신의 감응을 이끌어 내는 매개체로 삼았다. 가뭄이 들 때마다 은하수와 별자리가 새겨진 거북 모양의 고인돌 앞에서 지극정성으로 비를 바라며 기우제를 올렸다. 밤하늘의 용과 같은 은하수가 타들어 가는 농토를 적셔 주기를 바랐던 그들의 간절한 농경의식과 천문 관측 행위가 이 고인돌 하나에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는 셈이다.
이 선사시대의 천문 기원과 용신 신앙이 조선 시대와 후대에 이르러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후대 사람들은 이 고인돌을 구궁팔괘암(九宮八卦岩)이라 불렀다. 조선 시대 전통 항해와 풍수용 나침반을 만들던 고창의 윤도장은 윤도를 완성한 뒤, 바로 이 구궁팔괘암 위에 올려놓고 남북 방위(자오정침)가 정확히 일치하는지 검증했다. 동서 방향으로 완벽히 들어맞는 고인돌의 능선과 특정한 3개의 성혈 홈은 무려 400여 년 동안 윤도의 정확성을 측정하는 일종의 표준 기준점이 되어주었다.
선사시대에는 비를 구하고 농업의 풍요를 빌던 하늘 은하수의 제단이었고, 조선 시대에는 방위를 측정하는 첨단 기준점이 되었던 산림리 고인돌 가. 고인돌에 새겨진 성혈 하나하나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삶을 일구었던 인간의 오랜 지혜와 염원이 묵직하게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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