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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권컬럼]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의 옛 추억과 발전방향..
오피니언

[이형권컬럼]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의 옛 추억과 발전방향

뉴스비타민 기자 deok1506@daum.net 입력 2022/05/03 23:42 수정 2022.05.03 23:51

이형권 컬럼리스트

[뉴스비타민=뉴스비타민기자]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의 옛 추억과 발전방향.

현재 전주 팔복동 산단에는 예전 코카콜라 자리에 더메이 호텔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래 산업단지 부지라 인.허가 자체가 제한 지역이지만 전주시와 협의를 통하여 용도변경 후 더 메이 호텔 신축과 예식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 메이 호텔 옆 부지를 전주시에 기부 체납하고 그곳에 L.H공사에서 근로자형 아파트 신축을 최근마치고 곧 입주예정에 있습니다.

또한 BMW 전시매장도 이곳부지에 들어설 예정에 있습니다.

근로자 아파트 길 건너 예전 팔복동을 대표하는 BYC 전주 제조공장 6만여평이 현재 매각단계에 있어 귀추가 주목 되고 있습니다.

전주시의 그동안 각종규제와 입주 업체 업종제한으로 팔복동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지만 크게 변화가 없습니다.

팔복동에서 제일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BYC 대형 판매 매장이 최근 매각을 마치고 그곳에 연건평 2만3천여평의 지식산업쎈타건물이 신축예정에 있습니다.

팔복동 주민들을 위해 신축건물안에 주민자치쎈타를 기부체납하는 건축주의 배려가 돋보입니다.

1970~1980년대 전주시 팔복동 제 1산업단지는 그야말로 공단이 살아 숨쉬는 전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팔복동 공단에는 삼양사.코카콜라.문화연필.전주제지.백양메리야스.썬전자.에이스제과 연탄공장.전주주물 등 이름만 떠올려도 그때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르는 기업들이 즐비했습니다.

아침에는 수 많은 근로자들이 자전거 또는 회사 통큰 버스를 타고
기찻길 옆 도로를 따라 출.퇴근을 하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의 베트남 자전거 부대를 연상할 만큼 자전거 출.퇴근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제 1산업단지에는 BYC 당시 백양메리야스 공장과 수백개의 임가공 협력업체 공장들의 근로자들이 가득하였고 원단을 자르는 재단기와 미싱 돌아가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B.Y.C 전주공장과 협력업체 공장에는 수 천명의 여성 근로자들이 머리에 하얀 스카프를 쓰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열심히 산업전선에서 일하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가정마다 형제 자매들이 기본 5명 이상이었고 동생들 또는 오빠들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서 희생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산업 현장마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여공들과 배움의 기회를 놓친 근로자들의 주경야독을 돕기위해 엊그제 고인이되신 BYC 한영대 회장의 배려로 정명여자 상업고등학교를 공장내에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먹고살만한 직장들이 많지 않았고 가장 많은 근로자들이 대부분 봉제공장에 종사하였습니다.

익산에는 쌍방울.태창메리야스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으며 전주에는 백양메리야스의 근로자들이 공단이 가득 할 정도로 차지 하였습니다.

팔복동 공단 주위에는 월세방들이 즐비하였고 대부분 열악한 자취생활로 어린 근로자들이 참 고생들도 많았습니다.

겨울에는 대부분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하였으나 제대로 설비가 되지않았고 문틈사이로 또는 금이간 구들장 사이로 밤새 연탄가스가 새어들어와 많은 희생자가 생기는 슬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자취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연탄가스 중독으로 함께 희생되는 어린 근로자들이 많았습니다.

저와 동갑내기인 이종사촌도 21살의 젊은 나이에 연탄가스의 희생양이 되었고 오열하는 이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철도길 옆 카세트 테잎을 제조하는 썬전자 근로자들은 회사의 부당해고와 근로에 불복하는 단체행동과 과격한 데모로 회사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였습니다.

근로자들과 경찰의 대치속에 취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였고 당시 회사마다 노조가 결성되어 단체 실력행사는 경영진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서울 구로공단에 입주한 대우 원림산업등 일부 공장과 익산의 일본 모회사인 가발공장 그리고 성일통상등 신설 노조들이 회사의 부당한 경영에 맞서 데모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 때의 젊은 추억으로 가슴속에 남아있을 당시의 근로 모습들이었습니다.

7~80년도의 추억들이 팔복동 제1산업단지의 역동적인 산업근대화 시기가 지나고 그후 30년이 지난 지금의 공단의 모습을 생각 해 봅니다.

팔복동 코카콜라 자리만 더 메이호텔과 웨딩홀로 바뀌었을 뿐 문화연필.B Y C 공장 그리고 근처의 그 많은 협력업체 봉제공장이 있었던 대형 빨간 벽돌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 조용히 시간에 머물러 있는 듯 합니다.

당시 극한 데모로 공장문을 닫았던 썬전자 자리와 주변에는 지금의 팔복 예술공장으로 변신하여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나 찾는 사람이 적어 전주시의 고민을 다시한번 주문 해 봅니다.

또한 지금은 옛 추억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들을 재현하고 추억과 낭만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포토존과 팔복동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옥상 전망대와 까페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팔복동 제1산업단지가 지금까지 침체일로에 걷고 있는것은 역시 전주시의 행정에 잘못도 한몫 하고 있습니다.

전주시는 제1산업단지및 주변 공업지역 재생사업지구에 섬유.의복.펄프.종이.화학제품의 제조업등은 일체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50년된 전주산단에  휴비스.전주페이퍼.BYC.삼양사등 관련업체가 많아 산단 내 업체간 미래.산업 유치를 위해서는 유사 업종은 입주를 제한한다는 조례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산단은 텅텅 비워있습니다.

전국의 지자체 중 유일하게 전주시만이 이런 안일한 행정 규제로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대학을 졸업한 우리의 젊은이들은ᆢ

일자리를 찾아 경상도.경기도 서울로 떠나가고 그 결과 전북의 인구는 180만도 붕괴되는 전국에서 꼴지의 재정자립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전주시와 공무원들은 시민들의 좀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하여 기업의 어려움을 청취하고 공장설립에 대한 걸림돌인 규제들을 과감히 철폐하고  어떻게하면 기업의 투자자와 시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 입니다.

새로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의 자세는 시민들의 질좋은 삶의 영위와 전주시 발전에 후퇴만 있을 뿐 입니다.

공무원들은 감사가 두려워서인지 시도는 처음에 잘 하려고 했다가 그 일이 잘못되면 지적당하는 일에 굳이 앞장서서 왜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ᆢ

저는 그러한 공무원들의 사명의식을 다시한번 고취 해 보았으면 합니다.

금번 6 .1지방선거에 능력있는 시장과 시의원들이 선출되어 팔복동 공단을 구로공단의 디지털 단지처럼 활력있고 생동감있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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